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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경포대

관동8경 중의 하나인 강릉 경포대.

송강 정철이 5개의 달이 뜨는 곳이라 말한

그 곳이랍니다~~

고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

이 그것이며,

월송정 대신 흡곡(歙谷)의 시중대(侍中臺)를 넣는 경우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동팔경 [關東八景] (두산백과)

관동팔경 중 으뜸인 경포대

하늘, 호수, 바다, 술잔, 님의 눈동자의

다섯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이다.

경포호의 둘레는 4.3km로 새바위와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깃든 홍장암이 있다.

수원화성 서장대

수원화성

조선 정조 때에, 경기도 수원시에 쌓은 성.

정조 18년(1794)부터 20년(1796) 사이에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주관하에 축성하였는데,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갖추고

거중기 따위의 기계 장치를 활용하는 따위의

우리나라 성곽 건축 기술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적 제3호.

출처:국어사전

수원 화성 서장대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상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의

모임지붕으로 되어 있다.

뒤편에는 8면의 노대(弩臺: 서노대)를

세웠는데, 이곳은 쇠뇌를 쏘는 군사인

노수(弩手)가 머물던 곳이다.

또한 현재는 복원이 안됐으나

후당(後堂) 3칸을 지었다.

서쪽 두 칸은 온돌이고,

동쪽 1칸은 판자를 깔았다.

모두 창과 분합문을 설치하고 단청을 하였다.

 

부산 달맞이길

달맞이길

명칭 유래

달맞이 고개를 지나는 도로라서 붙은 이름이다.

달맞이길은 길이 4,700m, 폭 8m의 2차선

도로이다. 와우산을 통해 해운대와 송정을

연결하는 고갯길을 확장 포장하였다.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이르는 해안 절경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달맞이길은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이르는

와우산 중턱의 고갯길로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서 하는 달구경은 대한 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달맞이길 중간쯤에는 해월정과 달맞이 공원이 있다.

 

인천 월미공원전망대

인천 월미공원전망대

월미근린공원 조성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된 전망대는 월미도 일대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월미공원의 주요 관광지입니다. 전망대에서는 인천 시가지는 물론 서해 바다와 인천항 일대, 인천대교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출처:인천시홈피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기원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672)의 옛 터를 활용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구축하였습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으로, 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였습니다.

또한 남한산성은 성곽을 쌓는 축성술 면에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아즈치·모모야마시대), 중국(명나라, 청나라) 사이에 광범위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영향을 받은 화포의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런 무기 체계의 발달은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행주산성

행주산성

행주산성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성의 축성기법이 삼국시대 양식으로 한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치루던 6세기 이전부터 행주산성의 실체가존재했음을 짐작케 한다.

1992년 시굴조사에서 출토된 삼국시대의 와당 및 토기 파편 등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군사전략상 요새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축성연대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설화를 통하여 행주산성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는 시기는 6세기 초 고구려 안장왕 때이다. 백제가 한강을 차지하고 있을 때 고구려가 행주를 공격하여 한강일대를 차지하게 되는 사건은‘안장왕과 한씨미녀’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의 을밀 장군이 행주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덕양산에 진을 친 백제군과 마지막까지 싸워 그 일대를 점령한 후 고봉산에서 봉화를 올렸다는 이야기는 행주산성의 존재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는데 이 시기는 주로 북방 오랑캐들과의 싸움이 주를 이루어, 한강 이남에 있는 행주산성이 전적지로서의 역할을 한 기록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조선시대를 양분하는 분기점이 된 임진왜란을 겪으며 행주산성은 주요한 전략적 요새로 등장하게 된다.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은 행주산성이 최상의 요새였음을 증명해주었다.

 

진강정

1970년 건립한 사각지붕, 건평 36㎡의 정자입니다. 호젓한 위치에 있어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정자 이름은 한강의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로 진강(鎭江)입니다. 한글 현판으로 서희환 선생의 휘호입니다.

특히 이곳은 2013년부터 행주나루터와 연결된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이 지나는 곳으로 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북한강변 운길산 수종사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으로 자연경관 가치가 높은 곳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으며,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이다.

정약용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 했던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곳이며, 또한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며, 현재 수종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다.

명승 제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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