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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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농촌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했어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소년의 크레용에서 어느 날엔 시냇물이 흘러나왔고,
파란하늘도 펼쳐졌으며 풀들도 부드러운 바람에 춤을 추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남몰래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에게 만화는 보석이었고, 꿈이었고, 자존심이었습니다.
소원대로 소년은 자라 신문사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날마다 평가절하 하며 퇴자를 놓았습니다.

“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 두는 게 어떨까?”
늘 이런 소리를 듣던 그는 급기야 어느 날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곳에서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그는 실의에 빠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다가 과거의 농촌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농촌에서 한 교회의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잡일을 했습니다.

지하창고의 어둠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의 지하창고가 보물창고로 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상처를 받은 그는 창고를 뛰어 다니는 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예쁘고 친밀감 있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쥐는 더 이상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니 다정한 말벗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입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오늘날
''디즈니랜드''의 주인입니다.

젊은이는 미키마우스를 만든 다음, 메리 포핀스,
신데렐라, 피노키오, 피터팬 등과 같은 만화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특히 대공황이 휘몰아치던 1933년, 늑대에 대항해
벽돌집을 짓는 돼지의 모험을 그린
‘세마리의 작은 돼지’라는 영화를 제작,
당시 암울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디즈니에게는 참혹한 지하창고가 사실은 보물창고였습니다.
가장 암울한 때 창조와 기회의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에게 지하창고가 없었더라면
'미키 마우스도'
'디즈니랜드'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처지나 제일 미운 친구, 싫은 동료가 혹여나 내일의 별이거나 보물창고가 아닐까요?

오늘 조금 힘들더라도
밝은 내일의 희망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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